
강보라 작가가 제16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바우어의 정원'을 비롯해 총 7편의 단편을 모아 소설집을 발표했다. 기대했던 대로 7편 모두 좋았고 그 중에서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과 '빙점을 만지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 특히 좋았다.
미술, 요가, 와인, 문학, 플라워 등 예술과 관련한 일을 하거나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 간, 그러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불편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잘 묘사했다. 선망의 대상이 되거나, 은근히 과시하거나, 속하고 싶거나, 무시하거나, 비판하거나 하는 그들의 이 불편함은 취향의 문제인가 아니면 계급의 문제인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서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심리적으로는 모두가 불편하다. '뱀'과 '양배추'처럼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없다고 여겨서였을 것이다.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 그리고 예술가를 인식하는 방식이나 태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인아영 평론가와 예소연 작가가 언급한 대로 나 역시 '취향에서 비롯된 계급'이 작품들 곳곳에서 보였다.
p48 현오가 내게 소개해준 사람들은 전부 뭔가를 창작하거나 그 비슷한 일을 했다. 어려서부터 갈고닦은 취향과 관점을 바탕으로 정해진 길을 걷듯 편안하게 예술계에 진입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앞에서 현오의 인정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세속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창조성을 생계와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삶. 그런 삶이 세상에 그렇듯 흔하다는 걸 나는 현오와 만나며 알게 되었다.('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p176 사랑하는 사람이 책 다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남은 반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 같은 책이 아닌, 다디단 설탕물을 입힌 탕후루 같은 책에만 이끌린다는 것. 일평생 언어를 사고의 근본으로 여기며 살아온 내게 그건 좀 치명적인 결함이었다.('빙점을 만지다')
그리고...
p149 새틴 바우어가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장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던 내담자들. 그들은 오직 그 순간에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삶에서 상처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사람들처럼.('바우어의 정원')
추천 ****(별4개)